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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당신 - 올리비아 에임스 호블리젤

유목적 표류 2024. 11. 23. 18:27

 

 

(줄거리 포함)

온화한 나날을 보내던 노부부, 올리비아와 홉. 삶이 늘 그렇듯이 두 사람의 앞날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홉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이다. 병의 진단을 받은 후 홉과 올리비아는 슬픔과 절망을 밀어내고 최대한 담담하게 그것을 마주하며 이겨낼 다짐을 한다.
 
이렇듯 홉의 알츠하이머 진단을 서문으로 시작한 책은, 이후 홉이 병을 앓고 삶의 마지막 장을 정리했던 지난 6년 간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같은 병으로 어머니를 잃었던 올리비아는 어머니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 모두가 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터라 서로가 힘들어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사랑하는 홉이 같은 상처는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진단을 받은 후에도 변함없이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그를 보며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의지하고 도움이 되고자 마음 먹는다. 하지만, 다른 케이스보다는 잘 풀려나갈 것 같던 이들의 앞날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먹구름이 드리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지적인 능력에 대한 애정이 깊은 홉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언어유희도 즐기던 사람이다. 하지만 알츠하이머의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면서 늘 외우고 다니던 시나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든지, 늘상 오가던 길에서 헤맨다든지 하는 '잊혀지고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경험'은 유쾌한 그마저도 힘들게 만든다.
 
점점 빛을 잃어가는 듯한 그를 보며 더불어 힘겨워하던 올리비아는 결국 자신의 스승이자 친구인 티벳 승려 티티를 찾아가 이에 대한 조언을 받는다. 그러자 티티는 이 모든 것이 행복이자 축복이며 수련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어 의문을 갖기도 했다. 과연 이 과정이 행복이자 축복인 걸까? 독자인 내겐 의아함과 감히 이해할 수 없을 조언이었지만, 삶의 끝자락을 거닐고 있던 두 사람에겐 티티의 조언이 힘이 된 모양이다.)

 

그렇게 '그나마' 수월한 2년을 보낸 후. 본격적으로 병의 증세가 보이기 시작한 4년간의 시간은 둘 모두에게 큰 고난과 위기의 시간이였다. 하지만 넘어져 다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낙담하진 않았고, 잠시 슬퍼하더라도 또 웃으며 그저 모든 것이 자연스레 흘러갈 수 있도록 오늘을 살았다. 
 
"삶의 모든 것이 질서 잡힌, 오늘은 죽기 좋은 날."
 
추수감사절을 하루 앞둔 날. 올리비아는 원주민들이 썼다는 이 말을 조용히 되뇌인다. 그리고 홉은 6년의 시간 동안 그가 최대한 담담하고도 유쾌하게 가고자 했던 곳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이후 올리비아는 책을 쓰기로 다짐한다. 남편과 함께 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의 의연하고도 씩씩했던 대처 방식을 떠올리며 말이다. 그 결과, 덕분에 바다 건너 멀리에 있는 나를 비롯해 여러 독자들 또한 둘의 여정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흘러가는 대로 두고 그 안에서 부지런히 발을 구르며 유영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이 책은 다행히도 비슷한 류의 가르침을 주었다.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날지라도 너무 낙담하지 말고 그 안에서 최대한 담담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 (그게 올리비아에게는 묵묵히 홉의 곁을 지키고, 홉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마지막 장을 평생 그가 해왔던 것처럼 재치있고 유머러스하게 마무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나니, 누군가와 마주하고 앉아 차 한 잔 하며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난 것 같은 기분이다. 부담스럽지 않고 묵묵히 들으며 가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상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사람은 평생을 배우며 수련해도 타인을 나처럼 알 수 없다. 심지어 내가 나조차 모르고 헤매다 끝내는 인생이 허다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 알 순 없어도 접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한결 성장시키는 듯한 경험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책을 읽은 후 겪게 되는 감상처럼 말이다.

 

 

오래 전 책이라 절판되었고 구해 읽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접할 수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어보시길 하는 마음에. 추천글을 남기며 마무리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