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최은영 작가의 강연회에 다녀왔다. 대기자도 꽤 많았던 인기 강연이었는데, 운 좋게 일찍이 신청하여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강연은 총 두 시간 정도. 한 시간 반은 강연 진행,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짧은 사인회를 가졌고 후에 마무리 되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준비해가지 못해 사인을 받지 못했는데 아직도 좀 아쉽다ㅜㅜ 이제와 별수 없는... 그러나 강연 내용이 너무나 알차고 좋았기에. 평일 저녁 시간 내어 참여한 데에는 전혀 후회가 없었다.
강연 들을 당시엔 집중하느라 필기를 하지 않았고, 후에 곧장 집으로 돌아와 메모장부터 열었더랬다. 떠오르는대로 기억을 더듬으며 마구 써뒀었는데, 오늘은 그 성긴 내용을 조금만 어루만져 다시 남겨두려고 한다.
(기억난대로 썼던지라 밑의 내용들은 시간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님을 알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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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소중한 인연이다. 자신의 글(책)이 독자들에게 가 닿았다는 사실 자체가. 수많은 작가와 글, 책이 있는데 하필, 우연하게도 자신의 것을 선택해 읽어줬단 것, 그리해서 이렇게 만나기까지 했다는 건 정말이지 소중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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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글, 또는 글쓰는 일에 따른 결과?에 바라는 건 크게 없다던 말씀. 그저 누군가에게 제 글이 한 줄이라도 읽히고 그들에게 도움이자 위로가 되었다면 그걸로 되었다고. 이 부분에서 내가 왜 글을 쓰는지, 어쩌다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더불어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에 대한 마음도 떠오르게 되었는데... 결과만 짧게 말하자면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는 것. 어쨌거나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나 좋아서 하는 일인데, 자신의 소중한 일상과 시간을 내어 응원해준다는 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게 감사한 부분. 진심 나는 행운아구나, 라는 생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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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반부에 한 템포 쉬어갈 겸 단편 '답신' 일부분을 낭독해주셨는데 정말 좋았다. 개인적으로 자매와 앙금이 있던 상태였는데, 본의 아니게 뼈도 맞고.. 살도 발라지면서 많은 걸 뜨끔-깨달았던. 솔직히 눈물날 뻔해서 혼자 광광 울 순 없기에 잠 깨고 눈물 쏙 들어가는 혈자리 내내 꾹꾹 눌렀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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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과거 경험해본 바 스스로에게 유해한 관계에서 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자기신뢰, 자기수용, 자기사랑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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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특별히 '여자' 캐릭터의 '여성' 서사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저 자신이 겪어본 걸 아는대로 썼을 뿐(모르는 감정이나 일에 대해 쓰기는 조금 꺼려지신다고 했던 듯), 그런 평가는 어쩌면 여자를 그저 '인간'이라는 분류에서 제외적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라고도. 자신이 쓴 건 굳이 만들어낸 여자 캐릭터의 여성 서사가 아니라 그저 보편적인 사람의 이야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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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본래 타고나길 섬세하고 예민한 성향의 사람이다. 때로는 그게 힘들고 버거웠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받아들였단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섬세함, 또는 예민함이란 그저 기질의 하나일 뿐 지워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고. 게다가 도리어 작가로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때도 있지 않겠냐는 말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성향인 바, 나는 나를 은근하고도 우회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는데(사회통념적으로 '성격 좋다' 일컬어지는 호쾌하고 넉넉한 사람이고 싶었으니까) 더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스스로 깨닫게 되었거든. 내가 아닌 틀에 스스로를 끼워넣고 억지로 가면을 뒤집어쓴 채 '무언가', '남'을 흉내내며 살아왔으니 이게 자기 무시, 자기거부가 아니고 뭐란 말이겠어. 나는 나를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왔지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일종의 자그맣고도 뚜렷한 터닝포인트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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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 후기. 작가님 조금... 많이(ㅎㅎ) 귀여우셨다. 어딘지 모르게 천진하신 구석이 있다고 할까. 하지만 하시는 답변마다 분명 중심점이 있었고 결코 대화의 주제, 화두에서 벗어나는 말씀을 하시진 않았다. 어떻게 보이려는 듯 애쓰는 답변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마음을 들려주시는 것 같다는 느낌에 다시 한 번 반했던.
- 본인의 글을 읽어주는 파트너이자 벗이 둘 있는데, 오래 함께 작업해온 편집자와 본인의 친구시라고. 작가님 자기 피셜, 본인은 줏대가 없는 편이라 '아니다'란 평을 들으면 금세 수긍하고 다시 쓰신다고 한다. 이게 듣기엔 유쾌하고 재밌지만 사실 뭔가 창작하는 입장에서 결코 쉬운 태도는 아니거든. 우스갯소리처럼 하셨지만 부럽기까지 했다. 저렇게 객관적 매의 눈과 정신으로 글을 살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언제든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지점까지. 최고야, 정말.
나름 기억나는 부분만 다듬어 적어봤는데, 곱씹다보니 그날 그 순간들도 떠오르고. 참 좋았는데.
단순히 순문학 지망생/글쓰는 사람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그저 한 인간으로서(특히나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을 가진 사람으로서) 인생마저 돌아보게 된, 고런 시간이었다.
아직 못 읽어본 작가님 작품들이 꽤 있는데 연말, 또 내년.. .그후에도. 꾸준히 접해볼 계획이다. 책을 읽고 너무 좋아 글쓴이까지 찾아본 경험은 다수였지만, 작가에게 반해 글마저 헤집고 다니게 만드는 경우는 또 오랜만이라... ㅎㅎㅎ 좋았다네요!
개인적으로 중소도시에서도 요렇게 작가님들, 유명인사들 만나 좋은 시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무리.
이야기와 글, 책은 역시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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