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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유목적 표류 2024. 11. 17. 17:46

 

 




근래 접한 작품 중에 가장 많은 분량이었으나 칙릿 대표작답게 쉬이 읽힌다는 점, 소설의 스토리와 주제가 공감이 간다는 점에서 어렵지 않게 읽었던 것 같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과거 동명의 드라마로도 제작된 적이 있다. 최강희 주연의.  덕분에 장점인지 단점인지 읽는 내내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졌었다. 

달도시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30대 여성 세 사람의 인생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렇게 말하니 토지처럼 대장정의 이야기일 것 같은데 그는 아니고, 인생 중 어느 한 시점을 보여준달까. 
32살이 된 주인공 은수와 친구 유희, 재인. 세 사람은 도태되거나 낙오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삶에서 분투 아닌 분투를 벌이는 중이다. 은수는 지겹지만 꼭 붙어있어야 하는 회사에서 살아남기를, 유희는 퇴사와 함께 새로운 꿈에 도전을, 재인은 조건이 맞는 사람과 결혼을. 이것이 그들이 매일같이 마주하는 현실이자 목표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답게 소설에는 사랑 또한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은수와 인연이 되는 연하 태오와 약혼남 영수가 그렇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둘에게도 각기 장단점이 있어 결국에는 서로의 길을 걷게 되지만, 은수가 두 사람과 만날 때의 에피소드들은 내가 직접 곁에서 친구의 연애를 지켜보는 것처럼 간질간질하면서도 웃음이 터지기도 하는, 말그대로 공감백배의 즐거움이었다. 개인적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결말이 아쉽긴 했지만 이 결말의 방향이 은수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됐음을, 더 좋은 마지막이었음을 어느 정도 동의하기에 이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가와 캐릭터들 모두에게. 

엄마와의 갈등인 가정사와 친구들과의 우정을 성장 서사에 버무린 점도 좋았다. 사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사랑과 우정, 가족애, 모성애, 부성애 뭐가 그리 크게 다르겠는가. 결국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진리라는 사랑을 중심으로 이 모든 고민과 갈등이 생겨나고 그를 통해 모두가 성장해나가는 거다. 현실의 독자들도, 이야기 속의 캐릭터들도.

나도 나이가 나이인지 주인공들을 만나니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외모, 직업, 성격, 주변환경 모든 게 다르지만 내면의 이야기는 내가 썼나 싶을 정도였다. 차마 겉으로 내밀지 못하는 감정과 말들이 텍스트로 정직하게 찍혀있는 걸 읽고 있노라면 내 낯이 뜨거워졌다가 속시원해졌다가, 여러 감정이 오가곤 했다. 

좋은 작품, 좋은 책은 언제나 끝이 아프다. 정든 캐릭터들은 물론이고 한 세계와의 연결이 끊기는 것 같아 급속도로 외로워지고 슬퍼지는 것이다. 달도시 또한 그랬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휑한 게,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겠지. 란 생각으로 뒤덮였다. 때문일까. 사회가 규정한 선을 두고 울고 웃던 삼인방이 종종 생각날 것 같다, 진짜로.

몇 년 뒤면 무려 20년 전 작품이 되는 달콤한 나의 도시. 길다면 긴 시간을 넘어 여전히 읽히는 책이라니, 게다가 여전히 꽤나 공감받는 내용이라니.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글로서 마음이 통한다는 게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드는 생각, 내 글은 어떨까. 내 글도 수십 년이 흘러서도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에너지가 여전할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러기 위해서는 읽고, 쓰고 또 쓰고. 은수가 말했듯 단순히 아는 바와 겪는 것은 다름을 기억하며 직접 행동으로 보이자 결심한다.

사실 달도시는 어렵고 딱딱한 책을 읽었으니 잠시 리프레쉬 하자는 의도로 읽은 책이다. 의도한 바대로 즐겁고 예쁜 족적을 남긴 후 덮인 작품에 이젠 안녕을 고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은수든 유희든 재인이든 그리고 나든, 모두 어디서든 잘 지냈으면 좋겠다. 10년 뒤 지는 꽃을 보면서도 왜 꽃이 지느냐 서글퍼하지 않도록. 꽃이 지는 이유쯤 유쾌하게 증명할 수 있도록. 

 




이밖에도 자질구레하게 떠들고 싶었던 점.  

1. 그래서 태오랑은 다시 만나지 않았는지? 태오 나이가 어리긴 하다지만 왜 이렇게 철딱서니 없었는지. 태오 언행 보면서 몇 번이나 이마를 쳤는지 모른다...  동시에 이상하게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시몽이 떠올랐다. 연상 연하라는 키워드 말고는 성향이 전혀 다른데 말이다. 결말도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 둘 다 이뤄지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론 태오든 시몽이든 누나들이 받아주지 않은 탓이긴 한데, 독자 입장으로서는 뒷맛이 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