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홍콩
감독 왕가위
주연 임청하, 양조위, 왕페이, 금성무
고대하던 중경삼림을 드디어 봤다. (실은 본 지 꽤 됐지만 열흘이 지나서야 쓰는 게으름...)
화양연화를 인상적으로 본 후, 왕가위 감독의 필모를 쭉 훑고 싶어졌고 그 중에 가장 보고 싶었던 게 바로 이 중경삼림이었다. 화양연화와 마찬가지로 내용은 잘 몰라도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던 작품이고, 왕가위 감독 필모 훑기 작업이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임청하, 금성무 조연의 첫번째 에피와 양조위, 왕페이의 두번째 에피로. 첫번째 에피는 말그대로 어지러운 홍콩의 시대상을 그대로 욱여넣은 듯한 분위기와 화면 그 자체였다. 어지럽고 흔들리고 하지만 묘하게 이끌리기도 하는... 마약상인 임청하와 연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금성무의 짧은 만남이 전부인 이야기는, 어쩌면 불친절한 느낌으로 막을 내린다. 이러고 끝난다고? 여기서?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때에. 나도 처음엔 그랬다. 두번째 에피도 포함해서 어리둥절한 영화 그 자체였는데, 당시 홍콩의 어지러운 정세를 비유적으로 표현해낸 거란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무릎을 탁 치게 되더라.
내내 벗지 않는 선글라스와 레인코트 차림의 임청하와 댕댕 그 자체인 금성무의 조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크게 인상적이지도 않았던 것도 사실.
두번째 에피는 양조위와 왕페이의 이야기. 짝사랑에 빠진 왕페이가 양조위의 집에 몰래 드나들며 살림살이를 죄다 바꿔치기 하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와, 애인과 헤어지고 힘들어하다 결국엔 새로운 인연인 왕페이와 사랑에 빠지는 양조위의 이야기가 두번째 에피 되시겠다.
집안 물건이 저렇게 다 바뀌는데 눈치를 못 챈다고? 장난? 영화가 비현실주의인가? 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한 설정이라도 있나? 별의별 생각을 다하게 만들었던 부분도, 결국엔 홍콩의 어지럽던 정세의 비유와 연관이 있었다. 영국령이던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던 때, 범람하듯 하나둘 쏟아져 들어오던 중국 문화를 표현한 거라나. 그렇게 이해하고 보니 찰떡같이 이해가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스토커처럼 느껴지는 왕페이와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가 조금 거북하기도 했지만 뒷부분이 있어 다시 수긍할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만나지 않고 엇갈린 다음 시간이 흐른 뒤 리모델링 중인 옛가게에서 다시 만나는 그 스토리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제야 사랑이 사랑답게 느껴졌달까. 나한테는 그랬다.
영화 자체는 별 다섯개 중 세개 반.
기대했던 만큼의 영화는 아니었다. 별 네개 반인 화양연화에 비하거나 영화 자체의 명성에 비하면 기대에 못 미친 편. 하지만 영화의 ost가 남아있기에. 음악이 너무 좋아서 모든 단점을 상쇄한다. 왕페이 배우가 직접 부른 몽중인부터 캘리포니아 드림... 들으면 이미 그 시절의 홍콩 거리 안에 내가 있잖아요. 내가 임청하고 내가 왕페이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왜 사랑하는지는 확실히 알 듯싶다. 나도 중경삼림이 좋으니까.
기대에 못 미쳤다 뿐이지 싫은 건 아냐. 음악이 좋고 미장센이 좋고 분위기를 사랑한다. 어쩌면 이따금 다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까지 들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그, 그 분위기가 있어. 이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대체불가한 뭔가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게 그런 거 아니겠니.
영화 보고 났을 때보다 지금 후기를 쓰면서 한층 더 영화와 사랑에 빠진 느낌이다. 하나 하나 꼭꼭 곱씹으니 그런가. 음악, 분위기 사랑해... 기억 속에 덮어두었다가 언제고 끌리는 날이 오면 꼭 다시 꺼내보리다.
다음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뭐가 될까. 벌써부터 두근두근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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